인물
인물 262가나다순
- 가비니우스카이사르의 부하로 카이사르의 지지로 집정관에 당선된 인물.
- 가이우스 그라쿠스공화제 시대의 호민관. 무료로 밀을 배부하는 '소맥법'을 만든 인물.
- 가이우스 마리우스카이사르의 고모부로 갈리아 군 침입을 격파한 영웅이나, 지방민 반란 진압 과정에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살육으로 뒤덮는 공포 정치를 자행했다.
- 가이우스 카이사르율리아와 아그리파 사이의 아들. 요절했다.
-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바로로마의 신임 집정관. 칸나이 전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함.
-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소설 『사티리콘』의 저자. 로마 사교계의 총아로 네로에게 영향을 끼쳤다.
- 가이우스 피소칼리굴라가 신부를 빼앗아간 사람.
- 갈레리우스디오클레티아누스의 동방 부제. 310년대 초 '관용령'을 공포하여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를 종결 선언한 인물.
- 갈루스로마 황제. 어린 호스틸리아누스와 공동 통치했으나 고트족과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했고 민중의 비난을 받았다.
- 갈리에누스로마 제국의 황제. 아버지 발레리아누스가 페르시아 군에게 포로가 되자 단독 황제가 되었으나 무능하고 잔혹하여 30명의 참주가 출현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 갈바네로를 살해한 후 제위에 오른 에스파냐 속주 총독. 친위대에 의해 불과 3개월 만에 살해당했다.
- 게르마니쿠스티베리우스의 양자. 시민들의 인기를 받았으나 오리엔트에서 독살되었다고 전해진다.
- 고후해중국 황제. 흉노족과의 화친을 성립시켰다.
- 그나이우스 스키피오로마의 장군. 이베리아 반도 동부로 향했다.
- 그라티아누스서로마 황제. 발렌스 황제가 그와의 경쟁을 의식하여 성급한 작전을 결행하게 만들었다.
- 기번로마 제국 쇠망사의 저자로 코란과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대해 기술한 역사가.
- 나르세스환관으로 벨리사리우스 이후 동고트 왕국과의 전투에서 제국군의 지휘를 맡아 이탈리아 탈환을 완성했다.
- 네로제5대 황제. 초기에는 세네카의 섭정 아래 선정을 베풀었으나 점차 폭군이 되어 마침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네르바도미티아누스 살해 후 원로원에 의해 지명된 황제. 5현제 시대의 시작자. 트라야누스를 양자로 삼았다.
- 누메리아누스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임 황제로, 그의 죽음 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위에 올랐다.
- 대 카토위대한 감찰관으로 솔직하고 호쾌하며 엄격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 데모스테네스아테네 최대의 변론가 중 한 명과 동성 관계를 맺은 자. 카이사레아 방어 지휘관으로서 뛰어났으나 결국 함락되었다.
- 데키우스로마 황제. 고트족의 침입에 대응하려다 늪지대 전투에서 전사하고 그 시체를 찾지 못했다.
- 도미티아누스티투스의 동생. 아리우스파를 추방했으나 나중에 복위시켰다. 음모를 두려워해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다.
- 드루수스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스무 살에 장군이 되었으나 전투 중 낙마로 사망했다.
- 드루실라칼리굴라의 친여동생. 칼리굴라가 결혼했던 인물.
- 디오클레티아누스로마 제국을 4분할하여 통치한 황제. 제국의 혼란을 수습했으나 후계자 다툼을 야기했으며, 기독교인을 박해한 점으로 콘스탄티누스에게 거슬렸다.
- 라비에누스카이사르의 유능한 부관. 급여 문제로 폼페이우스의 군으로 탈주했던 유일한 자였다.
- 라이투스근위대장. 마르키아, 에클렉투스와 함께 콤모두스 암살을 주도했다.
- 레굴루스로마의 지휘관. 카르타고의 강화 제의를 일축했으나 본 곶 전투에서 패해 포로가 되었다. 이후 고문 끝에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가장 이른 동시대 사료인 폴리비오스에는 없고 후대 로마 사료(리비우스 계열·아피아노스·오로시우스)에서 처음 나타나는 전승이다.
- 레오 1세유스티누스가 근위병으로 발탁된 당시의 황제.
- 레피두스제2차 삼두정치의 일원. 카이사르의 심복으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중재자였다.
- 렌툴루스로마 집정관. 카이사르의 제안 대신 폼페이우스에게 국가보안 전권을 위임했다.
- 로물루스로마의 건국자.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했다고 알려져 있다.
- 루카누스세네카의 조카이자 시인. 네로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 루키우스율리아와 아그리파 사이의 아들. 요절했다.
- 루키우스 베루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동방으로 파견한 장군. 향락가였으나 파르티아족을 격파했다.
- 루키우스 아밀리우스 파울루스로마의 집정관. 칸나이 전투에서 전사함.
-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하드리아누스가 양자로 삼은 인물. 먼저 세상을 떠나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후계자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 루킬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 루키우스 베루스와 결혼하도록 제의받았으나 루키우스는 여전히 주색 잡기에만 빠져 있었다.
- 루피누스아르카디우스 황제의 친위대장. 동로마 제국을 조종한 네 명 중 한 명.
- 리비아 드루실라티베리우스의 어머니.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였으며 황태후로서 '조국의 어머니'로 불렸다.
- 리빌라안토니아의 딸. 티베리우스의 며느리. 세야누스의 정부로 고발되어 옥중에서 죽었다.
- 리코메레스로마 장군. 발렌스 황제에게 그라티아누스 황제의 원군을 기다릴 것을 충언했다.
- 리키니우스콘스탄티누스의 유일한 적이었던 동방의 정제. 많은 나이와 악덕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인기가 없었으며, 결국 처형되었다.
- 마고하밀카르 바르카스의 에스파냐 원정과 관련된 인물. 한니발의 동생. 책은 그를 신전 서약 '젊은 사자들' 네 명 중 하나로 서술하나, 정본 사료(폴리비오스)는 서약을 한니발 1인의 일화로 전한다.
- 마누엘 2세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한 오스만투르크의 위협에 대해 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요청했던 황제.
- 마르켈루스로마 원로원 의원. 렌툴루스와 함께 카토의 반대 제안을 지지했다.
- 마르쿠스 아그리파아우구스투스의 신임을 받은 위대한 행정관. 그의 딸 빕사니아는 티베리우스의 아내였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5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 자비심이 많았지만 친인척에게 과한 관용을 베풀었고, 심약한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목한 것을 후회했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카이사르의 친근한 부관. 클레오파트라와 결합하여 옥타비아누스에 맞섰으나 패배했다.
- 마르키아콤모두스의 애첩. 황제의 횡포를 견디다 못하고 에클렉투스와 라이투스와 함께 독살 계획을 주도했다.
- 마르티니아누스리키니우스에 의해 부제로 임명되어 비잔티움을 맡은 인물. 콘스탄티아의 약속에 따라 처형되었다.
- 마리우스투구와 갑옷을 만드는 대장장이에서 참주가 된 인물. 괴력과 배짱으로 병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황제의 자질이 부족했다.
- 마리우스 안토니우스집정관으로 카틸리나 반란군을 토스카나에서 피스토이아 근교로 추격하여 전멸시켰다.
- 마시니사누미디아의 왕으로 자마 전투의 영웅이자 '고대 최대의 괴물'이라 불린 인물. 여든여덟 살에도 기마군단을 지휘했으나, 왕자들의 반목으로 카르타고 공격을 초래하게 되었다.
- 마우리키우스포카스에 의해 암살당한 황제.
- 마이케나스수완 좋은 재정가로 아우구스투스의 관료 조직을 정비하는 데 참여했다.
- 마크리아누스근위대장. 잘못된 진언과 계획으로 에데사 전투에서 로마 군의 전력을 약화시켰다.
- 마호메트하심가 출신의 아랍 인물로 40세에 알라의 계시를 받았고 이슬람교를 창시하여 중동 부족들을 단결시켰다.
- 막센티우스69년 후계자 다툼에서 콘스탄티누스와 대립한 인물. 밀비아누스 다리 전투에서 패배했다.
- 막시미누스갈리아 민정 총독.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의 잔혹함을 따라 명문 일가를 살해했다.
- 막시미아누스디오클레티아누스의 공동 통치자로 서방을 담당했으며, 글을 읽지 못했으나 국무에 충실했다.
- 메메트 2세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한 오스만투르크의 술탄으로 전대미문의 기책으로 도시를 함락시켰다.
- 메살리나클라우디우스의 네 번째 아내. 파렴치한 여인으로 알려졌다.
- 밀로가난한 귀족으로 폼페이우스의 지지를 받아 클로디우스에 대항하는 폭려단체를 조직했다. 클로디우스를 살해했으나 유죄를 언도받아 마살리아로 도망쳤다.
- 바울로로마에서 기독교를 전파한 사도. 베드로와 함께 64년에 황제의 명령에 불순종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 바쿠리우스이베리아인 지휘관. 황제의 사절을 기다리지 않고 자의로 고트족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 발레리아누스로마 황제. 고결하고 충성심 강했으나 갈리에누스를 공치제로 삼은 최악의 결단을 내렸다. 에데사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에게 체포되어 포로가 되었다.
- 발렌스동로마 황제. 훈족의 남하로 인한 고트족의 대이동을 받아들였으나 관리 실패로 반란을 초래했고,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전사했다.
- 발렌티니아누스서로마 황제. 엄격한 군인이자 혹독한 통치자였으나 복지 정책도 추진했으며, 친동생 발렌스를 공치제로 삼아 제국을 동서로 분할했다.
- 베드로예수의 제자 중 첫 번째로 선택된 어부. 예루살렘과 로마에서 기독교를 전파했으며 네로 황제 시대 64년에 십자가형으로 순교했다.
- 베루스역대 황제 중 청파와 녹파의 경쟁을 이용하여 시민들의 인기를 얻으려 했던 황제.
- 베르킹게토릭스산악지대의 갈리아 기사로 '갈리아의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었다. 카이사르와 면식이 있었으나 갈리아 전역을 하나로 통일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 베스파시아누스제9대 황제. 이집트에서 귀환하여 비텔리우스를 격파하고 제위에 올랐다. 공중 화장실을 고안한 인물.
- 벨리사리우스유스티니아누스의 동방 전선 군사령관. 니카의 반란 진압과 제국의 영토 회복에 주도적 역할을 한 장군.
- 볼테르프랑스의 계몽사상가 Voltaire(1694~1778). 기번이 로잔 유학 시절 주네브에서 개인적인 친분을 나누었다.
- 부루스친위대장. 초기에 세네카와 함께 섭정했다가 죽었다.
- 브루투스카이사르의 옛 애인 세르빌리아의 아들. 카이사르의 총애를 받았으나 훗날 암살에 가담했다.
- 브리탄니쿠스클라우디우스의 아들. 아그리피나에 의해 제위 계승권을 박탈당했다.
- 비비아 사비나트라야누스의 종손녀로서 하드리아누스의 황비. 미인이었으나 성적 매력이 없었다.
- 비탈리아누스강력한 야만족 군대의 수령으로 민중의 인기를 얻고 있던 인물. 황제 주관 만찬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 비텔리우스게르마니아 원정군 사령관. 오토를 자살로 내몬 후 제위에 올랐으나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패배했다.
- 빈덱스갈리아의 총독. 반란을 일으켰다.
- 빕사니아아그리파의 딸. 티베리우스의 아내였으나 나중에 이혼당했다.
- 사투르니누스도미티아누스 치세 때 반란을 일으킨 게르마니아 총독.
- 살로메헤로디아의 딸로서 유명한 무용수. 어머니의 사주를 받아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하여 그를 참수하게 했다.
- 샤푸르사산조 페르시아의 왕. 아르메니아를 정복하고 에데사 전투에서 발레리아누스를 체포했다. 로마에 대해서는 잔혹했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관대했다.
- 세네카스토아 철학의 거장. 네로의 스승이자 초기 섭정자. 국고 횡령과 네로의 비행을 목격했으나 나중에 추방되고 사형되었다.
- 세레나스틸리코의 아내. 황제의 양모. 시민들의 오판으로 인해 고트족과의 내통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 세례자 요한요르단 강 기슭에서 회개와 세례를 설교하던 설교자.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나 후에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체포되어 참수당했다.
- 세르빌리아카이사르의 옛 애인이자 브루투스의 어머니. 후에 카시우스의 아내 테르티아를 낳기도 했다.
- 세바스티아누스로마 장군. 별동대를 이끌고 고트족 진영을 급습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전사했다.
- 세베루스로마 황제. 고트족이 다키아를 처음 침략한 시대의 황제.
- 세야누스친위대장. 황제의 신뢰를 얻었다가 반역 음모를 기도해 처형되었다.
- 섹스투스폼페이우스의 또 다른 아들. 형 그나이우스와 함께 에스파냐에서 군을 일으켰다.
- 셈프로니우스로마의 집정관. 꽁꽁 얼어붙은 트레비아 강을 건너 한니발과 전투를 벌였으나 완패함.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페르티낙스 이후 황제가 된 자. 콤모두스를 다시 복권하여 오히려 신격화했다.
- 소 카토대 카토의 자손으로 보수파 귀족의 대표. 아버지와 달리 정직하지 않았고 성미가 까다로우며 도덕군자처럼 행동했으나 호민관 이상의 지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 술라마리우스의 부관에서 시작해 로마의 독재자가 된 인물로, 카이사르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친구들의 중재로 추방에 그쳤다.
- 스크리보니아옥타비아누스의 두 번째 아내. 딸 율리아를 낳고 후에 리비아에게 밀려났다.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손자로,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 장군. 누미디아 왕자들 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하스드루발의 세력을 약화시킨 후, 규정 연령보다 일찍 집정관에 선출되어 카르타고 시를 완전히 파괴했다.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격파한 로마 최고의 영웅으로,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조부. 마시니사가 경외해마지 않았던 인물이다.
- 스틸리코서로마의 장군이자 아르카디우스 황제의 보좌관. 야만족과의 융합과 대로마 제국의 재건을 목표했으나, 민중의 오판으로 인해 408년에 처형되었다.
- 스파르타쿠스트라키아 출신의 검투사로, 카푸아에서 78명의 노예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7만 명의 반란군을 조직했으나 격렬한 전투 끝에 전사했다.
- 스포루스포파이아를 쏙 빼닮은 미소년. 네로가 거세시킨 후 아내로 삼았다.
- 스푸린나점성가. 카이사르에게 3월 15일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 실리우스메살리나의 정부. 메살리나와 결혼식을 올렸다.
- 아그리콜라로마 제국의 영토를 북방 고지까지 확대하려고 시도한 장군.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파면당했다.
- 아그리피나게르마니쿠스의 미망인. 아우구스투스의 손녀. 제5대 황제 네로의 할머니. 권력욕이 강했다.
- 아그리피나(클라우디우스의 아내)게르마니쿠스와 아그리피나의 딸. 클라우디우스의 다섯 번째 아내. 아무 두려울 것이 없는 권력욕강한 여인으로 네로를 황제로 만들기를 시도했다.
- 아나스타시우스 황제테오도라의 아버지 아카키우스가 사육사 일을 맡던 당시의 황제.
- 아르다시르사산조 페르시아의 건국자. 샤푸르의 아버지로 구왕조를 타도했다.
- 아르카디우스테오도시우스의 아들이자 동로마 황제. 실권을 갖지 못하고 네 명의 관리자에 의해 조종당했다.
- 아르키메데스고대 최고의 수학자. 시라쿠사의 참모로 로마군에 대항했으나 결국 살해됨.
- 아리스토불루스카루스 황제의 오른팔이던 인물로,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측근으로 영입되었다.
- 아리우스기독교 신학에서 이단으로 낙인 찍힌 인물. 콘스탄티누스의 추방 후 재불려와 궁정인이 되었고 콘스탄티노플 대성당 성체 배수에 참가하도록 허락받았다.
- 아만티우스궁정 내의 지배자였던 환관. 유스티니아누스의 후계 지명에 걸림돌이 되자 음모죄를 뒤집어쓰고 참수당했다.
- 아반두스리키니우스 함대의 제독. 크리스푸스의 공격으로 함대가 격파되어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비잔티움으로 도주했다.
- 아부 바크르마호메트의 친구이자 후계자로 마호메트 사후 2년 뒤 코란을 편찬하여 세상에 알린 초대 칼리프.
- 아브 탈리브마호메트를 보살펴주고 키운 친척 중 가장 세력가였던 백부.
- 아브드 알 무탈리브메카가 예멘 왕국의 병사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신의 보호를 믿고 신전을 지킨 마호메트의 조부.
- 아우구스투스카이사르 사후 공화제를 개혁하여 초대 황제가 된 인물.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같이 새로운 제국의 창건자로 평가된다.
- 아우구스티누스로마 교부. 로마의 함락을 지켜본 후 『신의 나라』를 저술했다.
- 아우렐리아누스일리리아 지방 빈농의 아들에서 황제가 된 인물. 로마 제국의 통일을 이루고 '태양교'를 창설하여 국교로 정했다.
- 아우렐리우스 코타민중파의 집정관으로서 기원전 75년 수혜자 4만 명으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소맥법'을 부활시킨 인물.
- 아이밀리아누스모이시아 지방의 총독. 갈루스의 명령으로 고트족을 격퇴했고 부하들에게 추대되어 황제가 되었으나 4개월 후 살해되었다.
- 아카키우스콘스탄티노플 대경기장의 동물 사육사. 테오도라의 아버지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곰의 남편'이라 불릴 만큼 친근감이 있었던 인물.
- 아킬라스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장군으로 포티누스와 함께 카이사르에게 대항했다.
- 아프라니우스폼페이우스파의 지휘자. 로마가 무방비 상태일 때 일거에 습격할 것을 주장했다.
-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가이쿠스로마와 카푸아 사이에 아피아 가도를 만든 감찰관.
- 악테네로의 측실. 어린 시절부터 네로의 유모로 지냈으며 충직한 여인이었다.
- 안쿠스 마르키우스로마의 제4대 왕으로 카이사르의 가계가 배출한 명문가의 시조가 되는 인물.
- 안테미우스친위대장. 동로마 제국을 조종한 네 명 중 한 명.
- 안토니누스 피우스하드리아누스 후기에 후계자로 지명된 황제. 전 재산을 국고에 쏟아 붓고 법전을 정리했다.
- 안토니아게르마니쿠스의 어머니. 드루수스와 안토니우스의 딸. 티베리우스의 암살 음모를 알려주었다.
- 안티노우스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청년. 나일 강에서 익사했을 때 하드리아누스는 대성통곡했다.
- 안티오코스 3세셀레우코스 왕국의 왕으로 안티오키아를 수도로 삼고 있었으나 로마에 격파당했다.
- 안티파테르카이사르를 돕고 그의 보호를 받아 갈릴리의 장관으로 임명된 유대인 실력자. 독살로 죽었고 그의 아들이 헤로데이다.
- 알라리크고트족의 뛰어난 지도자. 냉철한 두뇌의 소유자로 로마와의 협상을 통해 로마 시를 점령했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마케도니아의 위대한 왕.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에게 역사를 과시할 때 비교 대상이 되었다.
-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저명한 역사가. 페르시아 군의 진격의 야만성을 기록했다.
- 압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우덱스기원전 264년 집정관으로 메시나 해협을 건너 마메르티니 용병대와 함께 메시나를 급습한 로마 지휘관.
- 애덤 스미스『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 로마제국쇠망사 출간 후 기번에게 유럽 문단 최고봉에 올랐다는 찬사를 직접 보냈다.
- 에우독수스콘스탄티노플의 주교. 아리우스파에 속했으며 발렌스 황제에게 세례를 주었다.
- 에우독시아황비. 동로마 제국을 조종한 네 명 중 한 명.
- 에우세비오스니코메디아의 주교로서 아리우스파에 속한 인물. 337년 임종 시 콘스탄티누스에게 기독교 세례를 베풀었다.
- 에우트로피우스환관. 동로마 제국을 조종한 네 명 중 한 명.
- 에클렉투스황제의 시종장. 마르키아, 라이투스와 함께 콤모두스 암살을 주도했다.
- 에파프로디투스도미티아누스의 비서관. 25년 전 네로 황제의 손을 경동맥으로 이끈 비서관이었다.
- 엘라가발루스역대 황제 중 청파와 녹파의 경쟁을 이용하여 시민들의 인기를 얻으려 했던 황제.
- 예수 그리스도유대의 갈릴리에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되어 메시아임을 자각하고 설교를 시작한 유대인. 30년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으며 부활 후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 오다이나투스페르시아 군을 물리친 로마의 은인이며 시리아의 유명한 장군. 원로원으로부터 제국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유일한 참주이다.
- 오토은행가로서 갈바 이후 황제에 추대된 인물. 비텔리우스에 의해 자살로 내몬 인물.
- 옥타비아클라우디우스의 딸이자 네로의 첫 번째 황후. 정숙한 여인이었으나 포파이아의 질시로 살해당했다.
- 요르다네스로마 역사가.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의 의미를 기술했다.
- 요비아누스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의 죽음 이후 역전의 사령관으로서 추대되었으나 귀로 중 일산화탄소 중독사했다.
- 유다12사도 중 한 명으로서 예수를 예루살렘 장로회의에 밀고하여 그가 체포되도록 한 제자.
- 유바 1세누미디아의 왕. 폼페이우스파에 6만의 병력을 지원했다.
- 유스티누스농민 출신으로 직업 군인의 길을 걸어 68세에 황제가 된 유스티니아누스의 백부. 정치에 무능했지만 뛰어난 재무관 덕분에 장기간 통치했다.
- 유스티니아누스농민 출신 백부 유스티누스의 조카로,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어 38년 이상 통치했으며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로마법 대전을 완성한 최후의 로마 황제.
- 유스티니아누스 2세유스티니아누스의 후대 황제. 즉위 후 청파와 녹파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 유스티니아니수도 방위의 중추였던 제노바 출신 사령관으로 팔에 총을 맞은 후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쳤다.
- 율리아 (아우구스투스의 딸)아우구스투스의 딸. 성격이 활달하고 색정이 넘쳤으며 여러 번의 결혼을 강요받았다.
- 율리아 (카이사르 가문)카이사르의 딸로 폼페이우스와 정략결혼했으나 죽자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와 인연을 끊는 계기가 되었다.
- 율리아누스동로마 황제. 페르시아 정벌 중 화살에 맞아 사망했고,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해 제국에 혼란을 초래했다.
- 인게누스일리리쿰에서 황제를 사칭한 참주로, 진압된 후 갈리에누스의 엄한 칙서에 의해 잔혹한 보복의 대상이 되었다.
- 제노비아오다이나투스의 미망인으로 어린 아들을 옹립하여 팔미라의 여왕이 되었다. 7만 군대를 이끌고 로마 제국의 영토를 침략했으나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해 격파되었다.
- 카라칼라역대 황제 중 청파와 녹파의 경쟁을 이용하여 시민들의 인기를 얻으려 했던 황제.
- 카레소니아칼리굴라의 황비. 칼리굴라 암살 후 친위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 카루스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정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을 요직에 배속시켰던 황제.
- 카리누스카루스 황제의 아들로,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데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던 황제.
- 카스카원로원 의원. 암살 때 처음 카이사르의 등을 찔렀다.
- 카시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보낸 동방군 참모. 루키우스 베루스를 격려해 파르티아족 군대를 격파하도록 했다.
- 카시우스 카이레아근위대장. 칼리굴라에게 자주 모욕받아 그를 암살했다.
- 카이사르스물일곱 살에 원로원으로부터 추방당했으나 군중의 지지로 복권되었다. 천재지만 두통과 간질을 앓았고,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동성애자이기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 카이사리온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9개월간의 결혼 생활로부터 태어났다.
- 카틸리나귀족 출신으로 극단적인 민중파 강령을 주장하며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키케로의 고발로 체포되고 격퇴되었다. 최후는 피스토이아 근교에서 전멸당했다.
- 칼리굴라제3대 황제. 유대 민족에게 예루살렘 신전에 자신의 신상을 세우도록 명령하여 강한 신격화를 주장했다.
- 칼비누스카이사르의 부관. 폰투스의 파르나케스 왕을 격멸한 군단을 이끌었다.
- 칼푸르니아카이사르의 아내.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악몽을 꾸었다.
- 칼푸르니우스 피소로마의 명문가 칼푸르니우스 가문 출신의 참주. 귀족 출신으로 고결함을 인정받아 황제 갈리에누스에게도 예우를 받았다.
- 케드레누스콘스탄티노플의 신수도 건설을 지켜본 당시의 역사가로, 신수도의 화려함에 놀라움을 기록했다.
- 코르넬리아킨나의 딸로 카이사르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카이사르는 술라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녀와의 혼인을 지켜 사형 판결을 받았다.
- 코스로에스아르메니아의 왕. 30년간 페르시아와 항쟁했으나 결국 샤푸르의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 콘스탄티누스로마 제국의 황제. 후계자 전쟁에서 승리하여 단독 황제가 되었으며, 비잔티움을 선택하여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 콘스탄티누스 11세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황제로 항복하지 않고 제국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며 전투의 최전선으로 뛰어들어 전사했다.
- 콘스탄티누스 2세콘스탄티누스 사후 동방의 여러 속주를 통치한 인물. 아리우스파 사제들의 영향을 받았다.
- 콘스탄티아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여동생이자 리키니우스의 아내. 혈연을 이용하여 리키니우스에게 마르티니아누스를 처형하도록 말해 콘스탄티누스에게 항복하게 했다.
- 콘스탄티우스 1세디오클레티아누스의 부제로 갈리아, 에스파냐, 브리타니아를 방위했다. 랑그르 전투에서 위기에 처했으나 새로운 지휘 체계에 의해 구원받았다.
- 콤모두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심약한 청년으로 시작했으나 암살 시도 후 폭군이 되어 무고한 원로원 의원들을 살해하고 검투사로서 활약했으며 결국 부하에게 목졸려 죽었다.
- 쿠리오카이사르의 부관. 루비콘 강 도하 때 카이사르의 최후 결정에 일임받았다.
- 크라수스부르주아 출신의 삼두정치 지도자로 카이사르에게 빚을 청산해주는 등 원조를 했다. 후에 시리아를 통치하려다 파르티아인에게 격파당해 목이 잘려나갔다.
- 크리스푸스콘스탄티누스의 아들로, 리키니우스 함대와의 해전에서 아반두스 함대를 격파하여 제해권을 확보했다.
- 크산티포스스파르타 출신의 그리스인 장군. 카르타고를 구하기 위해 기병대와 코끼리 부대를 이용한 새로운 전술을 고안함.
- 클라우디우스뛰어난 역사가이기도 한 황제. 푸키누스 호수에서 대규모 모의 해전을 개최한 인물.
- 클레오파트라 7세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 카이사르와 융단에 숨어 만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았다.
- 클로디우스카이사르의 세 번째 아내 폼페이아와 간통한 청년 귀족으로, 카이사르는 간통죄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 키리아데스샤푸르가 추대한 꼭두각시 황제. 신분이 낮은 망명자로서 로마 제국을 배신하고 페르시아의 도구가 되었다.
- 키케로철학자이자 변호사로, 킬리키아 부임 시 청렴결백으로 칭송되었으며, 카틸리나 사건 때 주도적으로 반란군을 진압하고 사형을 요구했다.
- 킨나마리우스와 손을 잡아 로마에서 공포 정치를 벌인 집정관으로, 후에 그리스에서 아군 병사에게 살해당했다.
-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로마의 제7대 왕. 이탈리아 반도의 중앙부를 지배했다.
-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기원전 6세기의 로마 왕. 전승기념으로 고대 로마의 원형 대경기장(키르쿠스 막시무스)의 원형을 만든 인물.
- 타키투스도미티아누스의 암살을 기도한 원로원의 인물.
- 테오도라경기장 동물 사육사의 차녀로 태어나 창녀에서 황비가 된 여성. 유스티니아누스의 신뢰를 받아 국정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자선사업을 통해 여성들을 돕고자 했다.
- 테오도리쿠스지지하는 당은 없었으나 녹파를 지원했던 야만족 왕.
- 테오도시우스 1세동로마 황제. 유능한 병사로 고트족과 협정을 맺었으나, 사망 후 그의 무능한 아들들로 인해 제국이 혼란에 빠졌다.
- 테트리쿠스황제를 사칭한 참주 중 유일한 원로원 의원이었다.
- 트라야누스로마 제국의 황제. 제국의 영토가 최대 규모를 이루던 시대의 황제로, 콘스탄티누스의 후계자 다툼 배경을 설명하는 문맥에서 언급된다.
- 티겔리누스부루스의 후임 친위대장. 네로의 폭정을 거리낄 수 없었다.
- 티무르1402년 오스만투르크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중앙아시아의 제국 지도자.
- 티베리우스제2대 황제. 불운을 타고났으나 공정하고 적확한 치세로 로마의 국력을 배가시켰다.
-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리비아의 첫 남편. 옥타비아누스에게 이혼하도록 설득당했다.
- 티투스베스파시아누스의 장남. 천성이 유순하고 관대한 명군이었으나 2년 만에 역병으로 사망했다.
- 파르나케스흑해 연안 폰투스 왕국의 왕. 카이사르에게 격멸당했다.
- 파비우스 막시무스로마의 독재관. '당당한 무위' 작전으로 한니발을 견제함.
- 파우스티나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내. 천박한 바람기로 많은 애인을 두었지만, 황제는 이를 모르고 그녀를 정숙한 여신으로 신격화했다.
- 파울루스당시 가장 유명한 무적의 세쿠토르. 콤모두스가 이 이름을 자신에게 부여받기를 원했다.
- 판테아안티오키아에서 루키우스 베루스가 만난 미녀. 클레오파트라의 재림이라 할 정도였다.
- 페르티낙스콤모두스 암살 후 원로원 의원 중 추대된 새 황제. 콤모두스의 영예를 모두 삭제했고 3개월 후 세베루스에게 제위를 넘겼다.
- 포카스마우리키우스 황제를 암살하고 제위에 오른 백인대장으로 헤라클리우스에 의해 처형되었다.
- 포티누스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재상. 클레오파트라를 추방하고 카이사르의 도래로 처형되었다.
- 포파이아야심과 욕망이 많은 여인. 네로의 두 번째 황후. 유산으로 사망했다.
- 포파이우스 사비누스세야누스의 음모에 연루되었다고 고발되어 처형되었다.
- 폼페이우스술라를 지지하는 귀족군에 가담했으며, 후에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고 로마의 실력자가 되었다. 나중에 카이사르와 삼두정치를 이루었다.
- 푸블리우스 스키피오로마의 장군. 한니발의 동생이 제압한 이베리아 반도로 진격했다.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로마의 명장. 에스파냐 전장에서 아버지와 백부가 쓰러졌으나 스물네 살의 나이에 후임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카르타헤나를 함락하고 최후에 한니발을 격파함.
- 프란자이 전투에 참가했다고 증언한 인물로 기번은 그의 증언 신빙성을 의심했다.
- 프로코피우스율리아누스의 먼 친척으로 발렌스 황제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병사들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 프리스쿠스전 황제 필리푸스의 동생. 필리포폴리스 함락 후 고트족의 비호 아래 자의를 입었다.
- 프톨레마이오스알렉산드로스의 부장. 이집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건설했다.
- 프톨레마이오스 13세클레오파트라 7세의 남동생이자 명목상의 공동 통치자. 재상 포티누스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
- 프톨레마이오스 14세클레오파트라 7세의 남동생. 카이사르의 결정에 따라 형식상 그녀와 결혼하여 공동 통치했다.
- 플라미니우스로마의 대장. 한니발의 계략에 빠져 전멸당하고 전사함.
- 플로티나트라야누스의 황비. 하드리아누스의 애인이자 그가 황제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 인물.
- 피로스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피를 이어받은 에페이로스 왕. 코끼리 부대로 로마 군에 승리했으나 결국 격파됨.
- 피소카이사르의 부하로 집정관에 당선되었으며, 그의 딸 칼푸르니아가 카이사르의 아내가 되었다.
- 필라테로마의 유대 총독. 예수를 심문한 후 십자가형을 언도한 인물.
- 필리포스 5세마케도니아의 왕으로 로마에 격파당해 그리스 지역이 로마의 제1속주가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필리푸스로마 황제. 니코폴리스 건설과 관련된 인물이며 그의 동생 프리스쿠스는 필리포폴리스에서 항복했다.
- 하드리아누스고대 로마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불리는 인물. 동방 정복을 종결하고 법전을 정리했다.
- 하디자메카의 귀부인으로 마호메트가 25세 때 일하던 곳에서 그를 채용한 후 결혼한 여성.
- 하밀카르 바르카스한니발의 아버지. 로마의 보급기지를 공격하여 전과를 올렸으며 나중에 카르타고 군 총사령관이 됨.
- 하스드루발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지휘한 장군으로, 로마인 포로를 고문하여 처형하였으나 로마 군의 사기를 높였고, 결국 항복하여 목숨을 건졌다.
- 하심메카에 기근이 닥쳤을 때 재산을 분배하여 시민들을 구제한 마호메트의 증조부.
- 한나라의 고조중국 한나라의 황제. 흉노족과의 전투에서 7일간 포위되었다.
- 한노카르타고 대장. 메시나 전투에서 로마에 포로로 잡혔으나 철수를 표명했고 카르타고 정부에 의해 책형에 처해졌다.
- 한니발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배한 카르타고의 위대한 장군으로, 자마 전투에서 2만 명의 병사를 잃고 항복했으나 카르타고 원로원의 배신으로 도망쳐 크레타에서 독약을 마셔 자살했다.
- 한니발 기스코밀라이 해전에서 카르타고 함대를 지휘한 장군. 책은 이를 하밀카르 바르카스(한니발의 아버지)로 잘못 서술했다 — 하밀카르 바르카스의 지휘는 기원전 247년부터라 이 시점엔 등장할 수 없다.
- 헤라클레스그리스 신화의 영웅. 콤모두스가 자신을 이에 비유하여 사자의 모피를 걸치고 동상을 세웠다.
- 헤라클리우스위기에 처한 제국을 구해낸 황제로 개혁을 통해 동로마 제국을 900년 가까이 더 존속시켰다.
- 헤로데 대왕아랍계 인물로서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유대의 왕'으로 승인받아 예루살렘을 지배했던 왕. 친족들을 차례로 죽인 것으로 알려졌다.
- 헤로데 안티파스헤로데 대왕의 아들로서 로마 황제의 임명 아래 갈릴리를 다스린 장관. 헤로디아와 재혼할 때 이를 비난한 세례자 요한을 처형했다.
- 헤로디아헤로데 안티파스의 이복동생의 아내에서 헤로데 안티파스로 재혼한 여인. 세례자 요한을 죽이도록 계획한 인물.
- 헤르시아아르메니아의 왕. 안토니우스에게 토벌당했다.
- 헨리 4세마누엘 2세 황제가 방문하여 지원을 요청한 영국 국왕.
- 호노리우스테오도시우스의 아들이자 서로마 황제. 로마 제국사상 보기 드문 무능력자였다.
- 호스틸리아누스데키우스의 아들.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어 갈루스와 공동 통치했으나 고트족과의 전쟁을 거부했다.
- 황비 루피키나유스티니아누스의 백모이자 당시 황비. 테오도라와의 결혼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 흄영국의 철학자·역사가 David Hume(1711~1776). 기번과 친분이 있었으며, 로마제국쇠망사를 프랑스어 대신 영어로 쓰도록 제안해 기번이 이를 받아들였다.
- 히에론시라쿠사의 왕. 마메르티니 용병대를 토벌하려 메시나를 포위했으며 후에 로마와 부전동맹을 맺음.
- 히파티우스아나스타시우스 황제의 조카. 니카의 반란 때 청파와 녹파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으나 유스티니아누스에 의해 처형당했다.
데이터 기준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