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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약한 청년을 황제로 만든 제국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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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가 범한 최대의 실수
5현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비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훌륭한 장점인 동시에 유일한 결점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친인척에게는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선제 안토니누스의 딸인 황비 파우스티나는 동명의 모친을 꼭 빼닮은 미인이었다. 그러나 천박한 바람기까지도 그대로 물려받아 쾌락의 대상으로 선택된 남자들에게 접근하여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황제는 그녀의 애인 몇 명을 그녀의 소원대로 이권 많은 고관직에 등용했다.
고관에서 농민에 이르기까지 제국 내에서 그녀의 부정행위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오직 한 사람, 남편인 황제뿐이었다.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저서 『명상록』에서 정숙하고 온화하며 놀라우리만큼 충실한 아내를 자신에게 주신 신께 감사한다고 적고 있다. 또 그는 파우스티나를 여신으로 신격화했다. 원로원에 압력을 넣어 모든 신랑 신부는 결혼식날 이 '정숙한 여신'을 모시는 제단 앞에서 사랑의 서약을 올리는 법률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듯 황비에 대한 집착은 분명 비정상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업적을 부정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열다섯 살도 채 되지 않은 콤모두스에게 제위를 넘겨준 것은 그의 치적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었다. 아우렐리우스 역시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목한 것을 후회했지만 그것을 시정하지 못하고 4년 후에 타계하고 말았다.
콤모두스(177~192 재위)는 영화 『글래디에이터(검투사)』에서 주인공의 적으로 등장하는 황제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아버지를 살해한 후 황제가 된 것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피에 굶주려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굳이 말한다면 심약한 청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심약함 때문에 그는 간교한 측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결국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정치와 전쟁에 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고 무기력했다. 품행이 좋지 않은 측근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싸워야 할 야만족과 화평 조약을 체결하고 중요 사항은 이유 없이 반년 이상이나 결정을 보류했다.
그런데도 그는 민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얼굴이 잘생기고 연설에 능했으며 인격을 갖춘 듯 보였기 때문이다. 야만족과의 화평 조약 체결도 제국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환영을 받았다. 정복전에 나섰을 때 '로마로 돌아가고 싶다'고 응석 부리는 그의 모습도 넘치는 조국애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놀기 좋아하는 그의 모습은 젊은 패기로 여겨졌기 때문에 특별히 비난받지도 않았다.
이것은 민중의 인기라는 것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민중들도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원로원을 향한 광기의 복수
이즈음 콤모두스 황제는 국정에는 무능했지만 적어도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폭군으로 일변하게 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183년이었다. 콤모두스 황제는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콜로세움의 어두운 주랑을 걷고 있었다. 그때 기둥 뒤에 잠복해 있던 자객이 검을 빼들고 그를 습격했다. 그때 자객은 큰소리로 "원로원의 명령이다!"라고 외쳤다.
다행히 자객은 근위병에게 체포되었고 그 자리에서 이 음모의 배후 인물을 폭로했다. 그러나 자객이 말한 이름은 사실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 암살을 주모한 자는 콤모두스 황제의 누나 루킬라였다는 설이 있다.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지 못했던 그녀는 황태후 파우스티나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애인이 많았으므로 그 계획을 실행할 무리를 끌어 모으는 일은 간단했다. 물론 황제를 죽이려고 했던 자객도 그녀의 애인 중 한 사람이었다.
황제의 암살을 기도한 자들은 곧바로 전원 체포되어 벌에 다스려졌다. 조사 결과 자객이 말했던 배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 말이 젊은 황제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는지 그뒤부터 조금씩 독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단순히 시끄러운 관료 패거리들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원로원이 그의 가슴속에 공포와 증오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콤모두스 황제에게 몇 가지 밀고가 전달되었다. 대부분이 근거 없는 중상비방이었지만 그는 그 내용을 그대로 믿었고 또 이용했다.
원로원은 로마인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최고의 시민들로 구성되었다. 그런 그들이 누리고 있는 높은 지위와 특권이 콤모두스 황제에게는 오히려 범죄 행위로 비쳐졌다. 황제는 그러한 의구심에 대해 차츰 확신을 가지게 되면서 그들을 차례로 체포했다. 재산이 많은 원로원 의원은 같은 업종의 경쟁 상대에게 비합법적인 상행위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밀고당했고, 성실한 의원은 황제를 비난했다고, 우수한 고관은 황제 자리를 노리는 위험 인물로 간주했다.
게다가 황제에게 있어서는 그들에게 씌워진 혐의가 확증적이었던 만큼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재판에서 그들은 무조건 유죄였고 그것은 곧 사형을 의미했다.
유능한 원로원 의원들을 차례로 살해한 콤모두스 황제는 로마 황제 중에서도 특히 더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인물로 변해 갔다.
충격적인 황제의 음란과 우행
콤모두스 황제의 머릿속에 국정 따위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자신이 무능했기 때문에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총신들에게 완전히 맡겨둔 상태였다. 그에게 황제의 권리란 오직 쾌락에 빠질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미인과 미소년 각각 300명을 후궁으로 불러모으고 그곳에서 매일 주지육림의 나날을 보냈다. 그들 모두는 황제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황제의 말을 거역할 경우에는 무시무시한 재판장에 서야 했다.
네로 황제는 폭군의 대명사로 자주 거론되지만 적어도 그는 음악이나 시 등의 예술에는 능통했었다. 그러나 콤모두스 황제는 지적 쾌락에 대한 취미는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교양이나 지식을 몹시 싫어했고 그나마 자발적으로 배우려 했던 것은 원형경기장과 원형투기장에서 행해지는 스포츠, 특히 검투사의 시합이나 야수 사냥과 같이 황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아버지가 일부러 그를 위해 주선해 준 각계 저명한 학자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투창술과 궁술만을 열심히 배웠다. 게다가 검투사로서 타고난 재능이 있었는지 가르치는 즉시 그 기술이 스승을 뛰어넘었다.
"멋진 솜씨입니다! 마치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하는 모습, 에리만토스 산의 멧돼지를 산 채로 잡은 신화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습니다."
황제의 비위를 맞추는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의 추종자들은 비난받아 마땅한 그의 행실에 열심히 박수를 보냈다. 인간이 맹수와 싸워 이기는 것을 영웅적인 행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훨씬 오래전의 일이었다. 추종자들의 부추김에 고무된 그는 먼 곳에서부터 맹수를 수송해 와서 짐승들의 살육을 즐겼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로마의 헤라클레스'인 양 거드름을 피우기에 이르렀다. 자신이 쓰러뜨린 사자의 모피를 제좌 옆에 놓고 제국 도처에 헤라클레스와 닮은 자신의 조각상을 세워 민중의 실소를 자아냈던 것이다.
무적의 검투사 콤모두스
황제에게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콤모두스 황제의 횡포는 끝간 데 없이 계속되었다. 급기야 황제는 근위들 앞에서만 선보였던 맹수와의 싸움을 로마 시민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황제가 경기장에 직접 출전한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로마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출전 당일에는 호기심이 발동한 시민들이 원형경기장을 빼곡이 에워쌌다.
그의 솜씨는 분명 뛰어났다. 질주하는 타조 앞에 버티고 서서 화살을 쏘면 긴 목이 그 자리에서 똑 떨어져 나갔다. 우리에서 뛰쳐나간 표범이 죄수를 향해 덤벼들게 하고는 화살을 쏘아 쓰러뜨렸다. 표범은 선혈이 낭자한 채 땅위에 나뒹굴었다. 물론 죄수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또 우리에서 풀려난 사자 100마리가 황제의 투창에 맞아 차례로 쓰러졌다. 백발백중의 솜씨였다. 코끼리와 코뿔소처럼 그림이나 이야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하고 기이한 맹수들이 인도와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들어와 황제의 손에 차례로 죽어 나갔다. 그러나 실상은 자칭 '로마의 헤라클레스'가 맹수들에게 습격당하지 않도록 강력한 근위병들이 이중 삼중으로 그를 둘러싸 보호하면서 맹수들에게 화살과 창을 던졌다. 이 광경을 본 민중들은 황제의 탁월한 솜씨로 여기고는 박수 갈채를 보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정도를 더해갔다. 황제에게 박수를 보냈던 민중들도 그가 검투사 '세쿠토르(추적자)'의 모습으로 원형경기장의 그라운드에 나타나면 할말을 잃고 말았다.
당시 경기장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세쿠토르와 레티아리우스(그물을 든)의 싸움'이었다. 세쿠토르는 딱 맞는 간소한 가면, 다리 부분과 오른팔에 부드러운 보호대를 대고 사벨(허리에 차는 칼)과 둥그런 방패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그에 반해 레티아리우스는 벌거벗은 몸에 커다란 그물과 삼지창만을 갖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혈전을 펼쳐나가는 것인데 승부는 어느 한쪽이 목숨을 잃을 때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공식 기록에 따르면 콤모두스 황제는 이 세쿠토르 역을 무려 735회나 했다고 한다. 즉, 무적의 세쿠토르였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이 잔혹하고 극악무도한 황제에게 감히 상처를 낼 것인가.
투기장에서 황제를 쓰러뜨리기라도 하면 승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갈채가 아니라 극형이었다. 불쌍하게도 레티아리우스 역에 발탁된 검투사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황제의 이러한 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명실상부한 검투사 자격을 갖기 위해 검투사의 공동 기금에서 연금까지 수령했다. 그것은 다른 검투사들에게 주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터무니없는 액수로서 그 돈을 지불하기 위해 로마 시민에게 새로운 세금이 부과되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헤라클레스로 불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당시 가장 유명한, 무적의 세쿠토르였던 '파울루스'라는 이름만이 그를 만족시켰다.
폭군에게 어울리는 최후
콤모두스의 악행이나 악명은 이제 전 로마에 알려졌다. 측근들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경멸의 눈초리와 비난의 목소리가 황제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온갖 비난 속에서도 황제는 자신의 행동을 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흉포함은 날로 더해갈 뿐이어서 사소한 일을 꼬투리 잡아 원로원 의원과 고관을 실해했다. 자신의 지위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앞의 두 황제인 안토니누스 가계와 연관된 자는 아무리 먼 인척이라 해도 남김 없이 색출해 내어 실해했다. 콤모두스의 분노와 적의에 희생된 수많은 원로원 의원들의 이름이 사서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황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불안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는 측근과 하인들까지도 믿지 못한 나머지 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동료나 선임자들의 죽음을 보고 두려움에 떨던 애첩 마르키아, 시종장 에클렉투스, 근위대장 라이투스 세 사람은 마침내 결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황제가 야수 사냥을 끝내고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궁정으로 돌아왔다. 마르키아가 독을 넣은 포도주를 권하자 그는 경계도 하지 않고 그 술을 다 마신 후 침실에 들었다. 마침내 독이 온몸으로 퍼져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을 때 건장한 젊은이가 침실에 나타나 단번에 그의 목을 졸랐다. 그의 시체는 측근들과 시민들에게 들키지 않고 비밀리에 밖으로 옮겨졌다.
황제 암살을 주도한 세 사람은 자신들의 쿠데타를 용인해 준 원로원 의원 페르티낙스를 새 황제로 추대하고 시민들에게는 콤모두스 황제가 뇌졸중으로 급사했다고 알렸다. 황제의 측근들은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의심을 품었지만 황제의 사망 소식을 들은 민중들이 기쁨의 환성을 올리자 마지못해 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페르티낙스는 황제가 되자마자 맨 먼저 콤모두스의 영예를 모두 삭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그로부터 3개월 후에 황제에 오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 의해 콤모두스는 다시 복권되어 오히려 신격화되었다). 시내 도처에 세워진 그의 동상(헤라클레스를 모방해서 만든 것)은 변덕스러운 민중의 손에 의해 모조리 깨부수어졌다.
그의 시체는 막대기에 걸려 검투사용 탈의장까지 질질 끌려감으로써 민중의 분노를 충족시켜주었다. 황제로서의 의무를 다하기는커녕 수백만 신민을 13년 동안이나 괴롭혀 왔던 폭군으로서 그 이상 적절한 말로는 없을 것이다.
페르티낙스 황제는 콤모두스의 직력 같은 것을 모두 말소하려고 했으나 애초에 아무것도 씌어진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황제로서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증거였다. 그는 아무래도 황제가 아니라 검투사로 태어났어야 할 인물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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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이 여럿이라 가르는 표시입니다. 「율리아 (카이사르 가문)」은 가문이 아니라 율리아라는 사람입니다. 괄호를 내용으로 읽으시면 안 됩니다.
포인트 한 장이 약 1만 자, 5천 토큰입니다. 어느 AI 창에도 그냥 들어갑니다. 잘라 붙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있습니다. 포인트 01·02 본문 45건을 사료와 대조해 심각한 오류 6건을 찾았습니다. 전투 승패가 뒤집힌 서술이 두 장에 하나꼴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사료 대조가 끝난 것은 포인트 01과 02, 둘뿐입니다. 나머지는 아직 문장 단위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 기준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