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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낳은 공포 정치

네로는 왜 폭군이 되었는가
30포인트 편역본
수도 로마는 대화재로 인해 초토화되고 말았다. 시민들은 황제 네로가 불을 지른 것이라고 술렁거렸다. 일찍이 아내와 어머니를 살해한 적이 있는 그는 온갖 범죄의 용의 선상에 오를 만한 여지가 있었으며 황제의 품격과 위엄을 폄하시킨 인물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_기번

세네카의 섭정이 이룬 전성기

열일곱 살에 제위에 오른 네로(54~68 재위)는 첫 5년간 선정을 베풀어 후에 '로마 최고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칭송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황제 네로의 이름으로 통치를 관장한 세네카의 공적이었다.
세네카는 스페인 코르도바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에스파냐인이었지만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딸이자 온갖 만행을 서슴치 않았던 율리아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황태후 아그리피나와도 혈연관계에 있었다.
세네카는 유배지 코르시카에서 뛰어난 논문과 처참한 비극 여러 편을 창작했으며 스토아 철학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때 인척관계에 있던 아그리피나가 그를 로마로 불러들여 황제의 스승이 되었다.
그는 아내 이외의 여성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성실했지만 권력욕과 금전욕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했던 것 같다. 놀랍게도 그는 국고에서 3억 세스테르티우스를 횡령하여 그것을 높은 이자를 받고 시민들에게 빌려주어 폭리를 취하기도 했다.
네로는 세네카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고 '황제는 군 최고사령관의 권한만을 행사한다'고 전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그 이외의 실질적인 모든 권한은 아그리피나와 세네카가 쥐고 있었다.
어머니와 스승이 섭정했던 처음 5년간 시와 음악에 능통했던 청년 네로는 누가 보아도 현명한 황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그리피나의 권세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 여제가 되어 자기 혼자 전권을 장악하려는 욕망을 품었다.
이에 질세라 세네카와 친위대장 부루스도 그녀의 이러한 욕망을 꺾기 위해 황제권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광분한 아그리피나는 친아들 네로의 제위를 박탈하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브리탄니쿠스를 황제의 자리에 올릴 획책을 시도했다. 그때 네로는 브리탄니쿠스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별장에 유폐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 락 맺었다.
네로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매력적인 한 남자가 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소설 『사티리콘』의 저자인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로 세련된 취미, 품위 있는 관능,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인물로서 '로마 사교계의 총아'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의 매력에 흠뻑 빠진 황제는 그의 패거리들과 어울리며 유곽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네로에게는 전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딸인 정숙한 아내 옥타비아와 역시 정숙한 측실인 악테가 있었다. 어린 시절 네로의 유모였던 악테는 소년 시절 그에게 성을 가르쳐준 사람으로서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네로의 시중을 드는 충직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유흥가의 여자들을 상대하면서 네로는 정숙한 아내와 측실에게 차츰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세네카는 네로의 이러한 행각에 주의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부추겼다. 야심 많은 그는 황제가 정사에 소홀한 틈에 부루스와 함께 로마를 통치하고 싶었던 것이다.

피의 광연에 취한 나날들

그런 네로 앞에 또 한 사람의 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네로의 부호 친구인 오토의 아내 포파이아였다. 명예욕이나 권력욕, 금전욕 등 모든 것이 황태후 아그리피나를 그대로 빼닮았던 이 여인은 로마 제국의 지배자가 되려는 욕망을 품고 있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네로를 자기 손 안에 넣으려고 했다.
포파이아는 사실상 쇠락을 거듭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번영을 구가하는 듯 보였던 수도 로마의 분위기를 그대로 구현한 여인이었다. 파렴치하고 음탕하며 타산적인 포파이아에게 농락당한 네로는 선량한 황후 옥타비아와 측실 악테, 두 사람을 버리고 그녀를 황후로 맞아들였다. 이 일은 로마를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하는 재앙의 서곡이었다.
'여제'를 갈망했던 악의 화신 아그리피나는 포파이아의 야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옥타비아와의 이혼에 대해 조언을 구하러 네로가 찾아왔을 때 단호하게 반대했고, 혈통을 지켜내기 위해 모자상간까지 제의했다. 그러나 네로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한편 포파이아 역시 순순히 물러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두려워하는 네로를 비웃으며 침실에 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네로의 귀에 대고 아그리피나가 모반을 기도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속삭였다. 마침내 그녀는 궁정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여 네로로 하여금 모친 살해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차마 자기 손으로는 어머니를 살해할 수 없었던 네로는 부하를 시켜 암살하게 했다. 먼저 독살을 시도했으나 이를 예상하고 있던 아그리피나는 해독제를 마시고 무사히 살아났다. 두 번째로 그녀를 강물에 던졌지만 죽을힘을 다해 물가로 헤엄쳐 나왔다.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자객 앞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네로를 잉태했던 자신의 자궁을 가리키며 그곳을 찌르도록 명했고 결국 그곳을 난도질당해 죽었다고 한다.
네로는 어머니의 시신을 운구할 때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보고 감탄하면서 그녀의 제의(모자상간)에 응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세네카는 이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다. 네로도 더 이상 옛 스승의 설교 따위에는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차 경기에서 마부로 일하는가 하면 극장에서 가곡을 독창하면서 원로원 의원들도 함께 무대에 오를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타락한 원로원에도 소수이기는 했지만 아직 기개가 살아 있는 인물들이 남아 있었다. 네로 황제는 그들을 차례로 처형하면서 매일 피의 광연에 취했다. 이렇듯 궤도를 이탈한 행적이 연이어지자 국고는 비어갔고 바닥을 드러낸 국고를 중당하기 위해 사형수의 재산을 모두 황제에게 유증하도록 강요했다.
물론 세네카는 이러한 조치를 비난했다. 아울러 네로의 문장과 시를 비판하여 결국 추방되고 말았다. 그는 캄파니아에서 은거하며 저작 활동에만 몰두했다. 친위대장 부루스가 죽자 네로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티겔리누스를 후임으로 지명했다. 이로써 황제의 폭정을 막을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때 네로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흐린 눈동자, 불룩 튀어나온 배에 짧은 다리로 수도 로마 전체를 장난감 주무르듯 하였다.
그때 그보다 한술 더 뜬 자가 있었으니 바로 황후 포파이아였다. 그녀는 아무 잘못도 없는 전 황후 옥타비아를 유배 보냈다. 그녀를 동정하는 많은 시민들이 옥타비아의 상에 헌화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포파이아는 황제를 설득하여 모친 아그리피나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녀를 죽이라고 종용했다.
네로는 옥타비아에게 자살을 명령했지만 그녀가 저항하자 자객을 보냈다. 자객은 황후의 몸을 묶어 증기욕실(사우나)에 눕힌 후 혈관을 베었다. 공포에 떨던 옥타비아는 몸이 따뜻해지자 혈행이 빨라지면서 무참히 죽어갔다. 당시 그녀는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이였다.
네로는 전 황후를 신들에게 봉헌하는 축제를 열기 위해 황금 궁전을 건설할 계획에 열중했다. 그러나 규모가 너무 커서 로마 중심부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황제는 좀더 합리적인 도시 계획에 따라 로마를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한 후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64년 7월에 그 유명한 대화재가 일어났고 일주일에 걸쳐 불길이 번지면서 로마는 잿더미가 되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

안티움(지금의 안치오)의 별장에 머물고 있던 네로는 화재 소식을 듣고 즉시 로마로 돌아와 정력적으로 구제 활동을 펼쳐나갔다. 기번에 따르면 "재해 피해자에게는 제실과 정원이 개방되었고 수많은 임시 가옥이 만들어졌다. 식량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넉넉하게 배급되었으며 도로를 정비하고 민가 건설을 촉구하는 칙령까지 발포했다"고 한다.
그 덕택에 불과 몇 년 후 로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거리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시내 도처에서는 로마의 대화재를 일으킨 것이 황제라는 소문이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그 즈음 네로는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신흥 종교에 눈독을 들였다. 이교도들을 화재의 진범으로 몰아갈 구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 시대에 팔레스티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려 '기독교(기독교)'라 불리던 신앙 집단이었다.
네로는 기독교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또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일단 방화범으로 내몬 이상 이유를 막론하고 모든 교도들을 체포하여 즉결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하고 대량 학살했다. 그때 행해졌던 처형 방법은 맹수의 먹이로 삼거나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몸에 기름을 발라 불태우는 등 실로 처참했다.
이 집단적인 순교로 인해 거의 모든 로마 시민들이 처음으로 기독교를 알게 되었을 정도로 당시 기독교는 작은 종교 단체에 불과했다.
네로는 방화범 사건 따위는 곧 잊어버리고 이전부터 갈망해 오던 로마 재건을 위한 도시 계획에 정력을 기울였다. 그의 열의와 재능으로 인해 아름다운 로마의 모습이 새롭게 탄생하려 할 때 황후 포파이아가 유산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태중의 아이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네로는 거리를 헤매다가 포파이아의 환영을 만났다. 사실 이는 황후를 쏙 빼닮은 미소년 스포루스였는데 네로는 그를 궁정으로 데려와 거세시킨 후 그와 결혼했다.
그가 다시 황금 궁전 건설에 열중하고 있을 때 귀족들에 의한 네로 암살 음모가 발각되었다. 먼저 세네카의 조카이자 시인인 루카누스가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그는 죄를 인정하면서 세네카 역시 공범자라고 고백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이 시인은 형 집행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대연회를 개최한 후에 스스로 혈관을 잘라 자작시를 낭송하면서 죽어갔다.
그리고 네로는 세네카에게 사자를 보내 사형 선고를 전달했다. 세네카는 아내를 꼭 껴안은 채 로마 시민들 앞으로 쓴 고별사를 읽고 나서 독이 든 당근즙을 마신 후 혈관을 잘라 스토아 학파의 거장답게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주변 인물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서 네로는 그리스로 떠났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로마의 예술과 체육 등 모든 행사는 그리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자신의 오랜 소망대로 그리스에서 열리는 실제 경기와 공연에 참가하려는 것이었다.
마차 경기에 출전한 네로는 낙마하여 꼴찌로 들어왔지만 심판은 황제를 우승으로 선언했다. 그후에도 네로가 출전하면 무조건 우승이었고,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면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그리하여 네로는 그리스의 공납금을 면제해 주고 전 그리스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다.
네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찬미하고 있다고 믿고는 그리스에서 획득한 많은 상패를 전 로마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개선식까지 하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갈리아에서 빈덱스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네로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네로는 여전히 정벌을 나갈 때 대량의 이동 무대 차량을 동원하여 전투 중간중간에 혼자 연기를 하거나 독창을 해서 장병들을 기쁘게 해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빈덱스는 그가 출전하기 전에 폐퇴시킬 수 있었으나 그에게 호응하여 봉기한 에스파냐 속주 총독 갈바가 이미 이탈리아 반도에 진군하여 로마를 공격해 왔다. 역대 황제들의 횡포에 계속 시달려 왔던 원로원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총독 갈바를 새 황제로 주대했다.
네로는 일거에 고립되었고 '미소년 아내' 즉 스포루스와 몇몇 시관만을 데리고 도주했다. 그 여행 도중에 손에 들고 있던 독약을 마시려고도, 또한 테베레 강에 투신하려고도 시도했지만 용기가 없어 성공하지 못했다. 로마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교외에 있는 친구의 별장으로 잠입했을 때 그는 자신의 처형이 결정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교수형이나 참수 등이 아니라 숨이 멎을 때까지 채찍질을 당해 죽는 형벌을 언도받았다.
겁에 질린 나머지 네로는 단도를 거머쥐고 자신의 가슴을 찌르려고 했지만 그도 역시 망설였다. 그러자 곧바로 비서관이 네로의 손을 경동맥에 대어주었다. 네로는 "위대한 예술가가 죽는구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최후를 맞이했다.
서른한 살의 나이로 네로가 사망한 후 카이사르가 구상한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왕조'는 종말을 고했다.
갈바의 병사들은 그의 시신을 정중하게 취급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로마 시민들은 뒤늦게나마 이 젊은 예술가 황제 네로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묘소는 오랫동안 신선한 꽃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네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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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이 여럿이라 가르는 표시입니다. 「율리아 (카이사르 가문)」은 가문이 아니라 율리아라는 사람입니다. 괄호를 내용으로 읽으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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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사료 대조가 끝난 것은 포인트 01과 02, 둘뿐입니다. 나머지는 아직 문장 단위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 기준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