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1
위대한 로마 제국의 탄생
로마 제국은 어떻게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는가30포인트 편역본
초기 로마의 영토는 몇 개의 언덕이 전부였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로물루스가 건국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영역이라고는 오늘날 로마 시에 있는 두 개의 언덕이 전부였다. 제4대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도 일곱 개의 언덕을 넘지 못했다. 주변의 여러 부족과 대전투를 벌였던 제5대 왕(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기원전 615~기원전 579 재위)부터 제7대 왕(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기원전 534~기원전 509 재위)에 이르러서도 이탈리아 반도의 중앙부를 지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전 지역을 장악하게 된 것은 50년에 걸쳐 이루어진 삼니움인 정복 이후였다.
로마는 이들 동맹군을 쳐부순 후 집권적인 '통일 정책'으로의 전환을 꾀했는데, 이때 로마가 취한 '분할하여 통치한다'라는 정책이야말로 강대국 로마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로마는 연합도시들에 대해 일정 부분 자치권을 부여하긴 했지만 도시마다 개별적으로 차별화된 조약을 맺어 그들이 공통의 이해관계로 단결하여 로마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즉, 모든 도시는 로마와 각각 정치 관계를 맺되 그들 상호 간의 동맹관계는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삼니움 전쟁로마가 캄파니아에서 벌인 전쟁으로 50년에 걸쳐 이루어짐.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지배하다
그러나 로마는 육로를 이용하여 오랫동안 타란토 배후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투리이 시가 로마의 '보호' 요청을 수락하자 수비대를 해로로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콜론네 곶을 넘어 군함 10척을 타란토 항에 정박시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피를 이어받은 피로스 왕은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왔다. 이때 로마 군은 상상을 초월한 신무기를 보고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은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에서 도입한 코끼리 부대였는데 그 무시무시함에 놀란 로마 군은 이내 패하고 말았다.
피로스는 여세를 몰아 다음해에 다시 로마 군에게 도전했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고 화평을 제의했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은 중의에 따라 피로스의 제의를 거절했다.
피로스는 세 번에 걸쳐 해협을 건너와 로마 군이 포위하고 있는 타란토로 진격했으나 이미 로마는 코끼리 부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피로스는 기원전 275년 베네벤토(베네벤툼) 전투에서 결말을 보지 못한 채 에페이로스로 귀환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군소 도시국가들은 잇달아 로마 군에 투항했고,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
로마는 더 이상 '보호국'이나 '동맹국' 관계는 맺지 않고 모든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이탈리아 전 영토를 로마에 귀속시켰다. 또한 감찰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가이쿠스가 로마와 카푸아 사이에 낸 아피아 가도를 브린디시와 타란토까지 연결함으로써 비로소 국가의 체계가 성립되었다.
2천 년 이상이 지난 현대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지사체·재판소·경찰·법률서·세무서 다섯 개의 기초 관리 체계로 유지되는 국가가 성립된 것이다. 이러한 체계를 바탕으로 로마는 세계 정복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 포인트에 서술이 딸린 인물·집단이 13이라, 관계가 많이 얽힌 7만 옆에 세웠습니다. 나머지는 본문 링크로 있습니다.
이 포인트의 지도
스크롤을 따라 지도가 움직여요지명 22곳. 이름을 누르면 그 화면으로 갑니다. 테두리만 있는 점은 위치가 추정입니다.- 인물 — 로물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가이쿠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피로스
- 지명 — 그리스, 로마, 로마 제국, 보스포루스 해협, 북아프리카, 브린디시, 시칠리아, 아드리아해, 아펜니노 산맥, 에페이로스, 이탈리아 반도, 인도, 지중해, 카르타고, 카푸아, 캄파니아, 타란토, 페니키아
- 사건 — 라틴 동맹 전쟁, 베네벤토 전투, 삼니움 전쟁
- 집단 — 그리스, 라틴인, 로마 군, 삼니움인, 에트루리아인, 원로원, 코끼리 부대, 헤르니키인
- 제도 — 백인대회, 분할하여 통치
- 저작 — 아피아 가도
여기 나온 인물·지명을 표 한 장으로 받아 시트에 붙여넣을 수 있습니다.
같은 이름이 여럿이라 사람을 가르는 표시입니다. 「율리아 (카이사르 가문)」은 가문이 아니라 율리아라는 사람 한 명이고, 괄호 안은 소속이나 시대 같은 구분자입니다. 검색하거나 발표 자료에 옮기실 때는 괄호까지 통째로 이름으로 쓰셔야 동명이인과 안 섞입니다.
아닙니다. 사진과 연대는 우리 자료가 아니라 위키미디어·위키데이터에서 따로 받아온 것이라 사람마다 있고 없고가 갈립니다. 인물 262명 중 사진은 164명, 생몰 연대는 168명에게 있습니다. 없는 자리는 지어내지 않고 비워 둡니다.이어서 About
전부 띄우면 오히려 못 읽어서입니다. 한 포인트에 평균 47명이 나오는데 문단은 40개뿐이라, 다 세우면 문단마다 카드가 붙습니다. 지명은 지도가 맡고, 나머지는 그 포인트에서 관계가 많이 얽힌 순으로 한 포인트에 열네 장까지만 세웁니다. 몇 중 몇을 세웠는지는 본문 아래에 적어 둡니다.이어서 읽기
지명에 마우스를 올리면 오른쪽 아래에 그 포인트의 지도가 뜨고 그 자리가 켜집니다. 키보드로 옮겨도 같습니다. 지도를 위나 아래에 붙박이로 두면 읽는 동안 화면 밖으로 나가거나 다 읽고 나서야 보여서, 물을 때만 답하도록 했습니다. 「읽기 설정」에서 오른쪽 붙박이·본문 아래로 바꾸거나 끌 수 있습니다.이어서 읽기
기본으로 꺼 뒀습니다. 지역·바다·강도 좌표가 점 하나뿐인데 그 점이 대개 그 지역 대표 도시 위라, 켜면 도시 이름을 가립니다. 실제로 「아프리카」는 「카르타고」에서 300m 떨어져 있고 「카파도키아」와 「카이사레아」는 좌표가 아예 같습니다. 끄면 두 지명이 12픽셀 안에 뭉치는 포인트가 30개 중 29개에서 8개로 줄어듭니다. 「읽기 설정 · 지도에 그릴 것」에서 켜실 수 있습니다.이어서 읽기
그 자리에 지명이 셋 있는데 너무 가까워 한 점으로 묶었다는 뜻입니다. 성소피아성당은 비잔티움에서 20미터 거리라 따로 찍으면 점이 통째로 포개져 아래 것을 누를 수 없습니다. 점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 묶인 이름이 다 나옵니다. 30개 포인트에서 65곳이 이렇게 묶입니다.이어서 읽기
이 화면 밖에 있는 지명입니다. 지도는 그 포인트의 도시들이 잘 보이도록 범위를 잡는데, 그러다 보면 멀리 있는 지역이 화면을 벗어납니다. 안 그리면 본문에서 그 이름에 마우스를 올려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나므로, 「저 바깥 이 방향」이라는 뜻으로 테두리에 붙여 둡니다. 정확한 자리가 아니라서 이름표는 달지 않습니다.
포인트 한 장이 약 1만 자, 5천 토큰입니다. 어느 AI 창에도 그냥 들어갑니다. 잘라 붙이실 필요가 없습니다.이어서 AI에 줄 자료
있습니다. 포인트 01·02 본문 45건을 사료와 대조해 심각한 오류 6건을 찾았습니다. 전투 승패가 뒤집힌 서술이 두 장에 하나꼴이었습니다.이어서 그냥 시키면 틀리는 것 · About
아닙니다. 사료 대조가 끝난 것은 포인트 01과 02, 둘뿐입니다. 나머지는 아직 문장 단위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이어서 그냥 시키면 틀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