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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력의 확산
이슬람교는 어떻게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는가30포인트 편역본
마흔 살에 알라의 계시를 받은 마호메트
예전에는 백만 명이 넘게 살던 영원의 도시 로마는 6세기 전반에는 2만 5천 명까지 감소했고 이미 언급한 대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고트족으로부터 간신히 로마 시를 탈환했을 때는 불과 수백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황폐화되고 쇠퇴한 것은 산업과 인구뿐만이 아니었다. 로마 제국의 지식과 서적도 절멸한 직전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겨우 성직자만이 성서를 이해하고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책을 읽을 뿐이었다. 읽히지 않게 된 대부분의 책들은 정작 대신 불태워졌다.
쇠퇴 일로를 걷고 있던 기독교 제국에 비해 이슬람 제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갔다.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에는 멀리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부터 물자가 흘러들어와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시내에는 3만여 채나 되는 모스크 건물이 즐비했고 1만 개가 넘는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로마 제국이 최고로 번성했을 때 로마 시내에도 공중목욕탕이 여러 개 있었다. 당시에도 공중목욕탕의 물을 데우기 위해, 또는 욕탕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의 기름이 필요했다. 로마 제국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 로마 시만 해도 연간 2천 톤 이상의 기름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중목욕탕이 1만 개가 넘었던 바그다드에도 엄청난 양의 연료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 연료는 여러 나라에서 유입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은 어떻게 그처럼 짧은 기간 내에 번영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마호메트는 아랍 제일의 명문 하심가 출신이었다. 그의 증조부인 하심은 메카에 기근이 덮쳤을 때 자신의 재산을 분배하여 시민들을 구제했다. 또 조부인 아브드 알 무탈리브는 메카가 예멘 왕국의 병사들에게 포위되자 엉뚱하게도 가축들의 반환을 요구했다. 이에 놀란 사령관이 그에게 물었다.
"너희들의 신전이 파괴되려 하는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느냐?"
"가축은 우리들의 것이지만 카바 신전은 신들의 것이다. 신전을 파괴하려 한다면 신들이 그것을 저지할 것이다."
그런 후에 예멘 군은 갑자기 새들의 무리로부터 돌 세례를 받는 바람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호메트는 그러한 유서 깊은 가문의 아들로서 570년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기 직전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까지 어린 시절에 잃었다. 그러나 친척이 많았기 때문에 유산으로 그에게 남겨진 것은 겨우 낙타 다섯 마리와 하인 한 명뿐이었다. 그런 마호메트를 곁에서 항상 보살펴주고 키워준 것은 친척 중에서도 가장 세력가였던 백부 아브 탈리브였다.
스물다섯 살에 그는 메카의 귀부인 하디자 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당시 미망인이었던 그녀는 결국 마호메트와 결혼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 신랑 측에서 금 340그램과 낙타 20마리를 신부 측에 보냈다고 한다. 이것을 준비해 준 것은 물론 선심 좋은 백부였다.
하디자와 결혼하여 유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마호메트였으나 그는 오히려 빈부의 격차와 그들이 행하던 우상숭배로 인해 번뇌했고, 결국 메카 교외의 히라 산에 있는 동굴에 칩거하여 명상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던 해에 그는 '일어나 경고하라'라는 알라의 계시를 받기에 이르렀다. 계시는 23년간이나 계속되었고 마침내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로 자각하고 사람들에게 유일신 알라에게 귀의하라고 설파했다.
"알라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마호메트의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 메카를 지배하고 있던 대부호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특권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한 그들은 마호메트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622년 마호메트는 박해를 피해 소수의 신자들과 함께 메카를 탈출하여 메디나로 도망갔다. 이 사건은 후에 히즈라(헤지라로)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슬람력의 기원 원년이 되었다. 참고로 이슬람력은 태음력치으로 1년이 354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태양력인 서력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서기 2003년 3월 5일은 이슬람력으로 1424년 1월 1일이 된다.
그가 메카에서 추방된 후에도 이슬람 신자들은 날로 늘어갔으며 그들은 주변의 부족들에게 이슬람교를 포교해 나갔다.
혹독한 사막이 만들어낸 강력한 신앙
원래 유대교가 번성한 곳이었던 메디나는 이슬람의 일신교 신앙을 받아들이기 쉬운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마호메트는 이곳에서 적극적으로 포교해 나갔다. 그는 또한 당시 메디나에서 일어난 내분을 해결함으로써 군사적으로도 신망을 얻었다. 이리하여 그는 메디나에서 정교일치의 이슬람 교단을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630년 1월에 마호메트는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메카를 포위했다. 다행히 그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메카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며 카바 신전에 놓여 있던 몇몇 우상들을 파괴하고 그곳을 이슬람교의 성당으로 만들었다.
현재 카바 신전은 메카의 모스크(이슬람교의 예배소) 중앙에 위치해 있다. 신전은 석조 높이 15미터의 입방체 건물로서 코란의 말씀을 자수로 수놓은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동쪽의 벽 밑에는 우상숭배가 금지되어 이전에 신성시되었던 검은 돌이 박혀 있었다. 이슬람력으로 12월에는 지금도 전 세계로부터 많은 이슬람교 순례자들이 이곳에 모여든다.
원래 마호메트가 신과 사도로부터 받은 말씀은 제자들의 손에 의해 야자 잎과 양의 어깨뼈에 기록되어 그의 아내 한 명이 관리하는 가구 속에 난잡하게 널려 있던 것을 대충 수거한 것이다. 마호메트가 죽고 나서 2년 후에 그의 친구이자 후계자이기도 한 초대 칼리프(이슬람 공동체의 통치자) 아부 바크르가 이를 편찬하여 세상에 알린 것이 이슬람교의 성전인 코란이다.
코란은 전체 11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슬람의 세계관, 신조, 윤리, 행위, 규범 등이 아라비아어의 산문시체로 서술되어 있다. 코란에 담긴 마호메트의 가르침에 대해 기번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마호메트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명료하다. 즉, '오르는 자는 침몰하고, 태어나는 자는 죽으며 썩어야 할 것은 썩는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는 이 사상을 기초로 인간이든 우상이든, 별이든 달이든 간에 이에 대한 숭배를 철저하게 배척했다. 그리고 우주의 창조주만이 시공을 초월하거나 가치관에 좌우되지 않는 존재라고 하여 이를 숭배한 것이다."
풍토와 종교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슬람교를 비롯하여 혹독한 사막에서 발생한 종교 가운데는 일신교가 많다. 그에 비해 풍요로운 땅에서 발생한 종교에는 다신교가 많다. 가혹한 환경에서는 절대유일의 신밖에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따라 우상숭배가 일제히 금지됨으로써 지금까지 행해져 왔던 산 제물 의식이 폐지되었고 기도와 단식, 그리고 회사로 대체되었다. 복수를 금기시하고 우애와 자선의 정신을 가장 귀중한 가치로 삼았으며 과부와 고아, 그리고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코란 아래 하나로 결집된 중동 세력
이렇게 단결된 이슬람 세력은 동서로 확장되어 나갔다. 제일 먼저 그들은 로마 제국이 약체화된 것에 편승하여 시리아를 손에 넣었다. 당시 시리아는 제국의 곡물 창고라 불릴 정도로 풍요로운 나라였다. 이곳을 손에 넣음으로써 이슬람 세력은 전시에 식량 부족을 해소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세력을 강화해 나갔다.
다음으로 그들은 사산조 페르시아(중세 페르시아 왕조, 현재 이란 남서부)를 향한 본격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페르시아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것으로도 유명한데 로마 제국과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느라 그들 군대는 피폐할 대로 피폐한 상태였다. 페르시아의 광활한 영토는 순식간에 이슬람 세력에 의해 침략당했고 사산조 페르시아는 멸망했다.
그후 이슬람 세력은 아프리카를 공략해 나갔다. 경제적 요충지였던 이집트, 시리아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의 여러 제국을 그들에게 빼앗긴 로마 제국은 국가의 존속을 유지하는 데만 간신히 성공했다.
이슬람 세력은 계속 전진해 나갔다. 8세기가 되자 그들은 지중해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가서 고트 왕국을 쓰러트렸다. 이후에 이슬람 세력은 기독교 제국의 '국토회복운동'에 의해 쫓겨나는 1492년까지 800년 가까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이렇듯 동서 광역에 걸친 지배로 인해 이슬람 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역대 지배자들은 오리엔트 특유의 학문뿐만 아니라 먼 나라들로부터 들어온 지식에도 강한 관심을 보였으며 이를 흡수하여 자신들의 문화와 지식으로 융화시켜 나갔다.
아바스 왕조 시대에는 '지혜의 관'이라 불리는 학술기관을 창설하여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아라비아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로마 제국의 황폐화로 인해 소멸되어가던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지혜는 공교롭게도 이 '지혜의 관' 덕택에 후세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이슬람 학자들에 의해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인도 등의 문명과 문화가 연구되었고 이슬람은 발전을 거듭했다. 중세 말기부터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르네상스 운동'도 이 아랍인들에 의한 문명, 문화의 보존과 융화가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코란은 단순히 경전의 의미뿐 아니라 정치, 경제, 법률, 나아가서 인간의 행동이나 본질을 다룬 책이다. 코란의 가르침 아래 서로 적대시해 왔던 중동의 부족들이 단결하게 되었고 그때까지 불필요한 내부 항쟁으로 낭비되었던 에너지가 하나로 결집되어 모두 외부로 향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이슬람이 순식간에 세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등장 객체
- 인물 — 기번, 마호메트, 아부 바크르, 아브 탈리브, 아브드 알 무탈리브, 유스티니아누스, 하디자, 하심
- 지명 — 그리스, 나르본느, 로마, 로마 제국, 메디나, 메카, 바그다드, 바르셀로나, 베지에, 북아프리카, 사산조 페르시아, 세비야, 시리아, 아그드, 아프리카, 에스파냐, 오리엔트, 이집트, 이탈리아, 인도, 중동, 지중해, 카바 신전, 톨레도, 툴루즈, 페르시아
- 사건 — 르네상스 운동, 히즈라
- 시대 —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사산조 페르시아
- 집단 — 고트족, 그리스, 기독교, 사산조 페르시아, 아바스 왕조, 이슬람 세력
- 제도 — 기독교, 유대교, 칼리프
- 저작 — 지혜의 관, 코란
이 포인트의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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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입니다. 30포인트 편역본은 한국어 편역이고 원전은 기번의 영문입니다. 섞어 인용하면 사실관계가 어긋납니다. 인물·관계 자료는 편역본 계통에서만 뽑았습니다.
같은 이름이 여럿이라 가르는 표시입니다. 「율리아 (카이사르 가문)」은 가문이 아니라 율리아라는 사람입니다. 괄호를 내용으로 읽으시면 안 됩니다.
포인트 한 장이 약 1만 자, 5천 토큰입니다. 어느 AI 창에도 그냥 들어갑니다. 잘라 붙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있습니다. 포인트 01·02 본문 45건을 사료와 대조해 심각한 오류 6건을 찾았습니다. 전투 승패가 뒤집힌 서술이 두 장에 하나꼴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사료 대조가 끝난 것은 포인트 01과 02, 둘뿐입니다. 나머지는 아직 문장 단위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 기준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