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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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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쇠망사: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의 저자인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1737년 영국의 런던 시 남쪽 교외에 위치한 서리 주의 유복한 지방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유럽의 교양문화는 프랑스, 그중에서도 특히 파리의 상류층이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오히려 지방 명문가에서 대대로 수집해 온 엄청난 분량의 고전 서적을 탐독하는 전통이 조부에서부터 딸에게로, 딸에게서 그 아들에게로 계승되곤 했다. 기번 역시 유년 시절부터 그와 같은 가정 환경에서 교육받으며 성장했다.
기번은 어린 시절부터 이국적인 이야기나 소설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아라비안 나이트』를 애독했다. 또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숙모 밑에서 자라면서 독서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고 영어로 번역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까지 탐독했다. 그가 성장한 숙모 집에는 문학 서적이 풍부했던 데 비해 기번의 집에는 종교 서적들이 넘쳐났다.
그러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면서 기번은 자신이 역사 분야에 특별히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나는 유년 시절부터 역사가가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라고 쓰고 있다.
이렇듯 기번은 충실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나 소년기에는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킹스턴의 그래머스쿨에서 교육을 받던 중 1년여 만에 병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열한 살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 입학한 기번은 그곳에서 라틴어와 라틴 문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이 또한 병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후에 기번은 집과 휴양지에서 요양을 하며 오로지 독서에만 몰두했다. 그중에서 특히 몰두해서 읽은 책이 로렌스 이처드의 『후기 로마 제국사: History of the Later Roman Empire』였다. 이때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후계자들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면서 대로마 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지게 되었다.
1751년 열네 살의 기번은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는 특별 자비생(sizar)으로 신사 계층의 이름에 걸맞은 스위트룸에서 종복을 데리고 생활했다. 그곳에서 방대한 학술 서적을 자랑하는 칼리지 도서관의 열쇠까지 건네받은 기번은 지도교수와 언덕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등 우아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무렵 기번은 뛰어난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꽃피울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성서의 역사 쪽으로 향하게 되어 개신교였던 기번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개종 사실을 전해 듣고 몹시 화가 난 그의 아버지는 열여섯 살의 기번을 스위스의 로잔으로 보내버렸다. 개신교로 재개종시키기 위해 칼뱅(Calvin)파 목사에게 그를 맡긴 것이다.
옥스퍼드에서 우아한 생활을 하다가 평범한 학생 신분으로 전략한 기번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필사적으로 잘 견뎌냈다. 그리하여 1년 반 후에 숙모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저는 선량한 개신교도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3년 반 동안이나 로잔에 머물게 하면서 단 한 번도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로잔에서 생활하는 동안 기번은 모든 시련을 견뎌가며 공부에 몰두했다. 라틴어 원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다시 라틴어로 개역하는 이중 번역 작업을 통해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를 알아보기도 하고, 호메로스의 작품을 그리스 원문으로 읽기도 했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자유로운 발상으로 자신들의 사상을 전개해 나갔던 계몽사상가들의 저서를 접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인 볼테르(Voltaire, 1694~1778)와 주네브에서 개인적인 친분을 나누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기번은 스무 살이 되어 그의 생애에서 단 한 번 연애에 빠지게 되었다. 상대는 가난한 개신교 목사의 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했으나 기번의 아버지는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기번가의 재정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으므로, 기번은 '결혼을 해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독신으로 살면서 학문에 열중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는데, 자서전에서 이때의 연애 사건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연인으로서는 한숨을 쉬었지만 자식으로서는 복종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흘러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고 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아물어 갔다." 이후 그는 두 번 다시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
스물한 살이 되자 기번은 영국으로 돌아와서 처녀작 『문학연구』를 프랑스어로 출간했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 저서를 통해 명예를 얻으면 외교관의 지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책은 약간의 호평을 받았을 뿐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 저서를 출간할 즈음에 7년 전쟁이 일어났고 그는 햄프셔 시민군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그는 시골에서 생활하는 장인과 농부들을 인솔하여 남부 여러 주를 행군했다. 또 전쟁이 끝난 1763년에는 부친을 설득하여 국회의원에 입후보하기 위한 선거자금을 '그랜드 투어'에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다.
'그랜드 투어'란 당시 영국의 양가 자제들이 교육, 특히 교양을 습득하기 위해 유럽 대륙을 여행하면서 문화 유적을 구경하거나 각 지방의 명사들과 교류하는 것이었다.
파리에서 그는 계몽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살롱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로잔에서는 독서에 탐닉했고 이탈리아에서는 토리노와 피렌체의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영원의 도시 로마'에 도착하자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잠도 자지 않고 꿈속을 헤매는 듯한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바로 이때 『로마 제국 쇠망사』의 플롯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옛날 로물루스가 서 있었고 키케로가 변론했으며 카이사르가 쓰러졌던 그 모든 역사적인 장소들이 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렇게 흠뻑 도취된 상태로 며칠을 지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냉정을 되찾고 세부적인 탐구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기번은 이 역사서를 당시의 국제어였던 프랑스어로 쓸 작정이었다. 그러나 친분이 있던 영국의 철학자 흄(David Hume, 1711~1776)이 영어로 쓸 것을 제안했다. 역사가이기도 했던 흄은 '언젠가는 영어가 프랑스어를 대신해서 세계 공용어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으며, 영국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로마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기번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1772년에 모국어인 영어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1776년 2월, 기번이 마흔에 접어들었을 때 『로마 제국 쇠망사』 제1권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희대의 명저라는 평가를 받았다. 초판은 며칠 내에 동이 났고 중보판인 2쇄도 발행 즉시 판매가 완료되었다. 그 다음해 초에 3쇄가 발행되었는데 아일랜드에서는 해적판이 나돌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각 가정의 식탁에는 물론 심지어 화장대 위에까지 이 책이 놓여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당신은 이 저서 하나로 유럽 문단의 최고봉에 섰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기번은 이러한 인기와 호평에 힘입어 저술 활동을 계속했고, 1781년에 2권과 3권을 발표하고 1788년에 세 권을 간행했다. 그가 57세의 나이로 사망한 1794년에는 이미 다이제스트판이 간행되기 시작했다고 하니 당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도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교양이라도 쌓을 요량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기번의 책부터 읽었다. 부친도 기번을 매우 좋아하여 중요한 부분은 암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의 로마사를 읽는 순간 나는 그의 이야기와 문장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마구간에서 돌아와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시간부터 저녁 무렵 폴로 시합이 시작될 때까지 나는 기번의 책을 탐독했다."
인도 수상이었던 네루도 젊은 시절 옥중에서 이 책을 읽고 "흐르는 듯한 선율을 가진 그의 문장을 다른 어떤 소설보다도 열심히 읽었다"라고 말했다.
『로마 제국 쇠망사』는 로마 제국 전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의 왕정 시대는 7대 246년간으로 끝나고 그 이후 기원전 509년부터 공화제로 이행하고 있다. 공화정 시대는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 Augustus'의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시작된 로마 제정 전까지 482년간 지속되었다. 기번은 이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이후(실제로는 2세기의 두 안토니누스 황제 시대부터이다)부터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로마가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과 배경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로마 제국이 발전 과정에 있었던 공화정 시대에 일어났던 세계사상 유명한 사건들—한니발과의 전투,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키케로의 활약, 카이사르(시저)의 갈리아 정복,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등—에 대해 기번은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을 모르고서는 로마 제국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전반부에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이 시기의 주요 사건들을 설명해 보려고 한다.
세계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자랑했던 대로마 제국. 그 대제국이 얼마나 거대했으며 또 어떻게 쇠락해 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세계의 흐름과 문명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교훈이 될 것이다.
가나모리 시게나리
『30포인트로 읽어내는 로마 제국 쇠망사』(북프렌즈) 원문. PDF 추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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